책과 함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여행산문집
대명이
2014. 8. 14. 16:11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여행산문집 중에서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쉬는 날이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에는 파도가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생각할 필요도없이
내가 태어난 곳이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여행의 폭을 위해서라면
한 장보다는 각각 다르게 그려진
두 장의 지도를 갖는게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고꾸라지는 기분을 이기고 싶을 때는 폭죽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가기 전이 좋다.
<책소개>
이병률 여행산문집. <끌림> 두 번째 이야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여전히 여러 번 짐을 쌌고, 여러 번 떠났으며,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의 여권에는 80여 개가 넘는 나라의 이미그레이션 확인도장이 찍혔다. 작가의 이 여행노트는 오래전부터 계획된 대단하고 거창한 여행기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의 일상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 날것 그대로임을 알게 해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작정하고 책상에서 앉아 깔끔하게 정리하고 쓴 글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길 위에 걸터 앉아서 혹은 어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그것도 아니라면 낡은 침대에 몸을 누이고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일 테다. 그 정제되지 않은 듯 생동감 넘치는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때 그곳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게 한다.
먹고 버린 라면 봉지에 콩을 심어 싹을 틔운 인도 불가촉천민들,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오히려 절반만 받겠다는 루마니아 택시 기사, 비행기가 좋아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혼자 다녀온 홍콩을 그대로 여행해보는 아들, 인터넷 랜선을 들고 숙소 꼭대기층까지 걸어 올라온 예멘의 청년 무함메드 등, 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슬라이드 필름 돌아가듯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알라딘 제공]